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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소식

감사한 날....

본인 허락없이 사연을 적는 것이 미안하지만 함께 나누고 싶으니 이해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진이나 영상은 생략합니다.

 

5-6년전일까요. 예전 바른정형외과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창백한 얼굴에 퉁퉁 부어있는 중3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휠체어를 타고

진료실에 들어옵니다.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휠체어를 뒤어서 밀고 있고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있습니다. 양다리에는 긴보조기를 차고 있었습니다.

 

 

" 제 딸인데 전신마비가 있어서 재활치료를 받으러 왔습니다. "

 

얘기를 들어보니 뇌에 악성종양이 생겨서 수술을 받았고 그 후 전신마비가 왔는데 지금은 약간

회복되었다 합니다. 수술후 항암치료에도 부작용이 많이 심해서 고생많이 했고 더군다나 종양도

예후가 별로 안좋다합니다.

진찰을 해보니  팔을 혼자서 들 수 없지만 물건을 가볍게 쥘 수 있는 정도,

다리는 무릎만 조금 펼수 있고 보조기 차고 부축해서 잠깐 설수 있는 정도.

스테로이드를 엄청 썼는지 얼굴은 달뎅이처럼 부었고 팔다리, 몸통은 살이 터진 흔적이 보입니다.

무표정한 얼굴, 찌들어 포기한 듯한 표정, 우울증도 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애를 밖으로 내보내고 아버지와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진단받은 뇌종양은 예후가 좋지 않다. 오래 못 살 수도 있다. 마비는 안 풀릴 가능성 많다.

지금 저 상태로 재활하는 것은 애가 너무 힘들다. 괜찮겠느냐? ' 물었습니다.

하필이면 예후가 아주 나쁜 뇌종양으로 보통 2-3년 살기 힘든 종양이었습니다.

 

아빠는 "하는데 까지 해봐야지요" 하더군요.

"저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하고 물리치료실로 보냈습니다.

 

물리치료실장에게는 특별 오더를 내고요.

사실 하루 1시간 가량 재활이 얼마나 큰 효과가 있었겠어요.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씩 꾸준히 옵니다.

 

오랜시간 뒤에 또 아빠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빠는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다리 마사지하고 근육운동시키고 4-5시간 강변을 걷는다고 합니다. 

힘들어도 늘 함께요.   

학교는 휴학했다 합니다. 

얼굴 표정은 담담하니 예전과 비슷한데 걸을 수 있다하니 많이 좋아졌나 봅니다.

또 한번 격려하고 한번 같이 웃고 열심히 해보라 했습니다.

참 대단한 아빠입니다. 

생업도 있고 개인적인 일로 바쁠텐데 아이를 위해 하루에 4-5시간을 할애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고 간혹 문제가 있을때 한번씩 상의하고 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인병원으로 이전을 했고 거의 3년 가량을 잊은 채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수술을 마치고 내려오니 치료실에서 기브스를 하고 있는 소녀를 보았습니다.

아니 이제 소녀가 아니지요. 다 큰 처자가 되었는데요.

정말 반가웠습니다.

"야~~ 반갑다. 그동안 잘 지냈어? 그런데 어디를 다쳤어"

" 발등뼈가 금이 갔데요"

" 그랬구나. 수술안해도 되는 걸 보니 심하지 않은가 보구나. 그런데 보조기 다 풀었네.

많이 좋아졌나 보다."

" 네~~~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요"

활짝 웃습니다. 처음보는 웃는 얼굴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다시 자랐고 얼굴붓기도 많이 빠지고 혈색도 좋아진 걸 보니 정말 많이 회복되었나 봅니다.

여전히 아빠도 뒤에서 웃고 있습니다.

" 이제 종양을 완치판정받았습니다. "

" 아!!!!! 정말 잘 되었습니다. 이게 다 아버지 덕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이 말 중간에 끼어듭니다.


" 원장님. 저 세무공무원 시험 합격했어요"


수줍게 웃으며 얘기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 휴학하고 독학해서 검정고시 보고 3년간 세무공무원 시험 준비했는데 올해 합격했답니다.

곧 연수원 들어가야 하는데 발을 다쳤다고 아쉬워 하는군요.

 

아~~~~~~

눈물날 뻔 했습니다.

이런 자랑스러운 딸이 있을까요. 이런 대단한 아버지가 또 있을까요

죽음의 문턱까지 가서 온몸이 마비되는 장애를 극복하고 

더군다나 엉망이 된 몸으로 독학으로 검정고시보고 세무공무원 고시에 합격하였답니다.

영화에 나오는 얘기같습니다.

한참을 이런저런 얘기로 수다떨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팔짱끼고 돌아가는 뒷모습이 참 아름다웠고 존경스러웠습니다.

                        

 

 

    ( 글쓴이 :정형외과 전문의 이영호 )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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